1996년-현재/ 콩고
캡션: 피란을 떠나는 모습. DR콩고(콩고민주공화국)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해있으며 인접해있는 콩고공화국과는 다른 나라이다. 다양한 부족들의 연맹체인 왕국 형태, 벨기에의 식민지를 거쳐 1960년에 독립을 한다. 이후 1965년에 군 사령관이던 조셉 모부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에 성공한다. 조셉 모부투 정권은 냉전 시기에 서방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32년간 독재 권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역 세력간 정권 쟁탈경쟁, 인근 국가와의 갈등, 빈번한 게릴라 활동 등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다가 1996년 제 1차 콩고내전이 발발한다. 이후 내전에서 승리한 로랑 카빌라를 필두로 1997년에 새로운 정권이 집권한다. 하지만 1998년, 로랑 카빌라는 자신의 집권을 도운 르완다 투치족을 비롯한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한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10여 개국이 참전한 2차 콩고내전이 발발한다. 1998년부터 5년간 이어진 이 내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지역분쟁으로 집단강간, 고문, 학살로 인해 약 4백만 명이 사망하고 2천 5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전이 멈춘 후에도 반군과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다가 2012년 4월에 본격적인 반군활동의 여파로 DR콩고의 동부지역에서 살인과 강간이 재발되었다. 2013년 12월에 반군과 정부 간 평화협상이 체결되었지만 여전히 유혈사태의 가능성이 잔존해있다.
1998년-현재/ 코소보
캡션: 학살된 알바니아인들의 장례식 대다수의 인구가 이슬람 계의 알바니아인으로 구성된 코소보는 2차 대전 이후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편입된다. 세르비아 인에게 코소보 지역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 항전한 성지임과 동시에 세르비아 정교회의 첫 번째 교구가 개설된 장소로 종교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에 1989년,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정책을 실시한다. 세르비아의 차별정책에 저항하던 코소보 분리주의자들은 1991년에 코소보 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한다. 이후 등장한 코소보 해방군은 1996년 세르비아와의 교전을 증대시켰고, 1998년 3월에 코소보 해방군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했다. 이에 세르비아는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살상을 저지르며 코소보 사태가 발발됐다. 특히 스켄데라이 마을에서는 총 주민 6만 5천여명 중 1,100명이 살해당하여 가장 극심한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인종청소’로 약 1만명 가량의 알바니아인들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다르푸르 학살
사진: 수단 정부에 의해 약탈되어 불타고 있는 마을 / UN photo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는 ‘푸르족의 집’이라는 뜻으로 기독교계 푸르(Fur)족이 농경생활을 이어온 곳으로, 오랜 가뭄으로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슬람계 아랍인들이 유입되면서 종교·민족 간 갈등이 반목되어 왔다. 수단 정부가 친 이슬람 정책을 택하면서 푸르족이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저항하다가 수단 정부의 ‘아랍화 정책’을 견디지 못하고 2003년 2월, ‘수단해방군(Sudan Liberation Movement/Army, SLMA)’ 등의 무장투쟁단체를 만들어 북 다르푸르 지역의 군 초소를 공격하면서 무력 투쟁을 시작하였다. 반군단체들의 공격을 받은 수단 정부는 정부군 병력으로는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 정부가 비밀리에 지원하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를 투입해 반군을 진압한다. 잔자위드의 대규모 소탕 작전으로 반군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무장하지 않은 기독교계 흑인이 무참히 살해된다. 이뿐만 아니라 반군을 지원하는 마을들에 대해서도 방화와 살인, 약탈, 강간 등의 잔혹행위를 전개하였다. 2003년 2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진행된 이 분쟁과정에서 약 30만명이 사망하고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유엔평화유지군의 배치, 정전협정 등의 노력이 이어졌으나 다르푸르 주에서는 현재까지도 유혈사태가 간헐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수단 정부는 잔자위드와의 연계성을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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