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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서관 소식
아침독서신문에 저희 평품집 집짱님 이야기가 실렸네요.
작성일 2016-02-03 오후 12:40:29 조회수 3857

 

분단의 땅에서 평화를 꿈꾸다
이권우가 만난 사람 - 1. 평화를 품은 집 명연파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명연파 씨가 그런 사람이다. 내로라하는 출판사인 사계절에서 30년을 일하면서 부사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동안 몸담았던 출판사는 조그마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출판사로 급성장하며 그림책부터 인문학 분야까지 아우르며 숱한 명저를 출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명예롭게 퇴진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에 매달렸다. ‘평화를 품은 집’(이하 평품집)이다.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에 자리잡은 평품집은 여러 가지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 평화도서관을 필두로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평품소극장, 북카페, 그리고 꿈교출판사가 한 지붕 밑에 옹기종기 모여 일하고 있다. 평화를 열쇳말로 한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퇴직한 후에는 어린이문화 관련 사업을 해본다고 말해온 터라 처음에는 의아했다. 평화를 주제로 한 문화사업을 할지는 몰랐던 탓이다. 제주도에 있는 4·3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기념관은 잘되어 있는 반면 자료실이 없어 아쉬움을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폐가식으로 4층에 있었다고 한다. 학살을 기억하는 공간이라면, 그곳은 평화를 꿈꾸는 곳이어야 마땅했다. 그때 평화 관련 전문자료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후반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30년간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삶을 살았으니 나머지 삶은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하려 했다. 그것도 가능하면 우리 사회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함께 준비했던 어린이체험마을은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평화의 가치를 널리 퍼트리는 다양한 문화사업 말이다.
명연파 씨는 평화라는 주제를 제노사이드라는 음각을 통해 도드라지게 하고 싶었다. 평화라 하면 개념정의부터 너무 범위가 넓었다. 평화도서관을 짓되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도 함께 세우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설득력 있는 구상이었다. 평화를 무엇이라 정의하든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한순간에 깨지고 만다. 그러니 평화와 전쟁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거기다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가 제노사이드이지 않던가. 마침 퇴사를 앞두고 회사에서 긴 휴가를 준 덕분에 제노사이드 기념관이 있는 나라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각 나라마다 기념관이 있는 데다, 자료를 거의 무료로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평품집이 자리 잡은 파주는 평화라는 낱말과 잘 어울리는 지역이다. 남한의 최북단에 자리 잡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데다 여전히 군부대가 많고 전쟁학살의 흔적이 숨어 있다. 더욱이 적군묘지도 있다. 남북한 시민과 군인, 그리고 한반도 전쟁에 참여했던 영국군과 중국군의 시신이 묻혀 있는 참으로 평화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지역이다. 아파트를 판 자금과 퇴직금을 합해 대지 60평에 평품집을 짓고, 바로 옆에 개인주택을 지었다. 이렇게 2014년 9월, 평품집이 문을 열었다.
평품집은 겉에서 보면 작아 보여 여러 사업을 한곳에서 펼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안으로 들어가보면 공간 활용을 아주 잘해 별 불편이 없으리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더욱이 전체 디자인도 상당히 세련되어 누가 봐도 이곳을 운영하는 이들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금세 느낄 수 있다. 그는 출판사에서 일해 잔뼈가 굵었고 부인인 황수경 씨는 파주출판단지에서 오랫동안 작은도서관을 운영한 전문가이니, 좋은 의미의 ‘선수’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자신을 평품집 ‘집장’이라고 소개하는 명연파 씨는 기본적으로 전체운영을 맡으면서도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을 활용해 평화교육을 진행한다.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은 전 세계 차원에서 벌어진 학살을 증언하는 자료를 모아 이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 큰 평수는 아니지만 전시를 잘해놓은지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도 계속 자료를 모으고 기획전시나 상설전시를 한다. 얼마 전에는 아르메니아의 제노사이드를 주제로 전시를 했고, 국내에서 학위과정중인 아르메니아인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파주라는 지역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곳의 제노사이드 현장도 답사하고 기록으로 남겨둔다고 한다.
평품집이 출판사도 한다기에 의아했다. 출판시장을 잘 알면서 출판사를 한다는 것도 무모한 일인 데다, 30년 동안 그 업종에 있었으니 지겨울 만도 할 텐데 그 짓을 또 하나 싶기도 해서다. 그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책들이 워낙 없고, 관련 자료를 구하러 외국에 나갔다 오면 세상에 알려주고 싶은 책들이 수두룩해진단다. 큰 욕심 없이 출판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정상궤도에 오르지 않은 듯싶다. 다행히 이쪽 분야의 책들이 없다 보니 관련단체들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해주는 일이 잦아지고 있단다. 지금까지 11종을 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출판을 하는 데 더 큰 꿈이 있어 보였다. 종국에는 평화교과서를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평품집을 연 다음에 평화관련 강의를 진행했다. 참가했던 이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화수업을 요청하거나 독서동아리에서 찾아와 수업을 듣는 이들이 많아졌다. 특히 성인들은 제노사이드 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열성 있는 분들은 아예 1박 2일로 일종의 평화캠프를 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자료집을 내야 했고 가능하면 체계적인 강의가 되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 착안한 것이 평화교과서다. 지금은 단발성 강의를 하지만 곧 평화계절학교를 열고, 이것이 자리 잡으면 아예 평화학교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면 자연히 교과서가 필요할 테니, 출판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북카페에 주문한 빵이 나올 동안, 명연파 씨가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각 나라의 비극을 요령껏 설명해주는 것을 보며 전문 평화학 강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왜 이리 평화교육에 관심을 쏟아부을까. 본인의 가족사에 이런 비극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고의 싹이 자라 제노사이드 같은 비극이 벌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이 다름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한다. 편견과 차별의식을 해소할 평화바이러스를 심어주고 싶단다. 두루 옳은 말이니 다른 토를 달지는 못했다. 평품집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평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삶과 세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평화라 했다. 한마디로 상생이 평화란 말이다.

<사진 한상수>

평품집을 나오며 생각해보니 명연파 씨는 이모작 인생을 성공리에 이끌어가는 듯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보다는 스스로 말한대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때 잡은 열쇳말이 평화였다. 꿈을 꿀 수는 있으나 실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꿈을 이루었고 장기적 계획을 짜고 평품집을 운영 중이다. 과거와 달리 그가 내면적 평화를 더 이루었다고 느낀 것은 지나치게 이른 판단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에게서 샤먼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제노사이드를 이야기할 적마다 그는 진심으로 국가가 희생시킨 개인의 억울함에 분노하고, 그들의 아픔을 해원해 주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 했다.
평품집은 현재 4백 명의 회원과 다양한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지금까지 5천 명 정도가 방문했다. 믿거니와, 그들의 가슴에 평화의 씨앗이 심어졌을 터. 기대하거니와, 그 씨앗이 이 땅에 널리 퍼지길….


이권우_도서평론가,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저자 / 2016-02-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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